구기자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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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08-01 19:2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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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조선시대 18세기 후반 신윤복(1758~?)의 작품 '연소답정'은 봄을 맞은 남녀 선남선녀들이 푸른 풀밭을 밟는 답정놀리를 그린 풍속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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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의 신분이었던 기새이말을 타고 양반집 자제들이 담뱃대를 들고 시중을 드는 모습이 계급사회이던 당시에는 해학적이 풍자로만 가능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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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1536~1584)는 당대의 선비로서 천민이던 기생을 향한 사랑이 지고지순했다.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던 율곡은 기생의 딸로 태어난 유지를 측은히 여겨 수청을 들게 하는 대신 공부를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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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태종 때 환관 정사징은 태종 형님의 첩 상왕 정종의 시녀와 간통을 했다. 1425년 세종 때는 시녀 내은이가 왕이 쓰던 푸른 옥관 - 왕건에 다는 작으 고리-ㅡ 훔쳐 환관 손생에게 준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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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안동 김씨의 세도에 밀려 제주까지 9년간 유배 갔던 추사 김정희(1786~1756)는 아내에게 쓴 편지는 어리광으로 도배된다. 떨어져 지내던 추사의 부인 예안 이씨는 생전에 추사의 어리광을 다 받아 주었고 귀향살던 추사의 마지막 편지를 보지 못하고 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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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가부장적인 봉건사회에서도 가정적인 남편의 역할도 기록에 남아 있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음식과 의복은 물론 농사일까지 살림을 직접 관리했다. 부인을 읽고 홀로 자식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던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은 직접 반찬거리를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내고 맛이 있었는지 편지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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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으로 세워진 조선의 역사는 모반과 역모의 연속이던 배신의 역사다. 그 중에서도 여인천하이던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성들은 부인으로 아낙으로 남편을 받들고 자식 뒷바라지에 왕의 궁녀는 일생을 금욕으로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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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페미로 대별되는 여성운동 속에는 그동안 억압된 환경에서 말 못 할 사연들이 웅축되어 부풀어진 풍선 처럼 내재된 아픔들이 유전되어 베어 있다. 

조선은 여인의 품에서 잉태되어 여인의 애정과 눈물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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