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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국왕의 자리를 지킨 태국의 살아있는 부처 - 푸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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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01-04 23:4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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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태국의 푸미폰(1927~2016) 국왕은 선대 왕의 불의의 총기사고로 사망해 19세의 나이에 국왕이 되었다.  


나라의 일은 삼촌에게 맡기고 통치자의 소양과 자질을 갖추기 위해 대학에서 정치와 법학 물리학을 공부했다. 


1950년 4월 23세가 된 푸미폰은 프랑스 주재 태국 대사의 딸인 시리키트 키티아카라와 방콕의 왕궁에서 공식적인 즉위식을 가졌다.


태국 짜그리 왕조의 아홉번째 왕으로 70년간 국왕의 자리를 지키며 태국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배경에는 지역발전을 위해 마을단위로 전국을 돌며 국민들의 고충을 직접 들으려 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2005년 발행된 1000바트 지폐 뒷면에는 푸미폰 국왕이 카메라를 들고 고산지대를 다닐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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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76개 주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치앙라이는 태국 미안마 라오스 세 나라의 접경지대로 세계적으로 최대의 아편 재배지였다.


푸미폰 국왕의 개발계획으로 아편 대신 커피농사로 바뀐 후 태국 제1의 커피재배지가 되었다. 유명한 '블랙 아이보리 커피'는 태국의 코끼리 똥 커피로 코끼리에게 33kg의 열매를 먹이고 배변으로 나온 단 1kg의 원두만을 추출하여 발효시킨 커피다.


푸미폰 국왕은 군부의 쿠테타나 대규모 시위 등 격변기의 중재자로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자 궁전의 문을 학생들에게 개방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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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와 잠롱 방콕 시장이 대립할 당시에도 두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 무릎을 꿇어 앉히고 준엄하게 질책한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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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푸미폰 국왕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상을 받았고 2006년 유엔으로부터 '인간개발 평생업적상'을 수상했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와은 생전에 '살아있는 신'으로 국민들의 추앙을 받았고 신분과 종족 종교를 초월해 극빈자와 취약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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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그의 헌신적인 삶은 88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전국의 애도 속에 '세기의 다비식'으로 또 한번 세계적인 뉴스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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