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세상만사

제주 섶섬과 이중섭, 그리고 이건희의 미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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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3-12 12: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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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대한민국 박물관 미술관 통털어 최고 수준의 마스터피스는 '이건희 박물관'이 될 예정이다. 지금의 '열린송현고원' 부지 일대에 들어서게 될 '이건희 미술관'이 기대된다.  


작가와 컬렉터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 운명적인 세계의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다. 한국에서 그림값이 비싸기로는 운보 김기창 보다 단연 김환기나 이중섭(1916~1956)이다. 


2018년 서울옥션에서 이중섭의 '소'는 자그마치 47억원에 팔렸다. 행려병자로 마흔 다섯의 짧은 생을 마감했던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던 성찰과 혜안의 눈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예술품 가운데 104점이 황소 흰소 등 이중섭의 작품이다. 그 보다 2021년 제주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된 12점은 보다 더 각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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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정부의 피란민수용소의 소개정책으로 제주로 간 이중섭은 서귀포 초가집에서 1년 가까이 가족과 지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안정감있는 작품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제주의 감귤 농장을 배경으로 '서귀포의 환상'은 8명의 아이들이 귤을 수확하고 있는데 파란 하늘까지 오렌지색 감귤 빛이다. 귤이 알차게 자라는 제주에서 가정과 함께 비록 작은 초가집이지만 이중섭 화가는 감사의 마음으로 행복했던 당시를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97년 이중섭이 살던 초가집을 복원해 만든 '미술관'은 이제 예술인들 뿐만아니라 모든 관광갯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귀포의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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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은 1939년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여인에 보낸 글없는 그림엽서 연작이 있다. 둘은 어렵게 결혼했지만 결혼 7년만에 '행복했던 11개월의 제주생활을 뒤로 한 채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이중섭의 그림엽서 연작과 더불어 한국 미술사에 길이 남을 은혜 축복이자 사랑의 스토리다. 마치고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그 많은 작품이 거래되고 팔렸지만 화가에게 돌아오는 돈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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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 이중섭 회고전에서 엽서화 은지화 수채화 등 180여점은 삼성가에서 모두 구입했고 그 중 일부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제주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되어 일반 공개에 이른 것이다. 


생전의 이중섭은 자신의 네 가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그런 절절한 그리움이 그림으로 미술작품으로 후대에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로 행려병자 신세가 되어 떠돌다 객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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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이중섭 서거20주기에 추모행사 참석차 내한했던 그의 부인은 2년 후 1978년 정부가 화가에게 추서한 문화훈장을 받았고 2022년 8월13일 화가의 곁으로 갔다. 7년을 부부로 살다가 70년을 못내 그리워 한 끝에 하늘나라로 간 화가의 '사랑의 기호학'은 그림은 '그리움이 쌓인 끝'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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