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이승만 - 광복회장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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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3-09 11:1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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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웬지 '건국전쟁'이라는 다큐영화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숨가쁘게 재조명한 듯한 기쁨에 보낸 내내 감동이었다. 바로 옆 상영관에는 '파묘'라는 남의 묘자리를 파는 영화가 몇 배의 관객동원수를 기록하며 동시 상영 중이었다. 영화판에도 카르텔이 있는 듯 관객들의 분위기도 다르다.
지난 1월 30일 '독립운동가 이승만 학술대토론회'는 발표자들의 내용을 정리해 책자로 나왔다. 사료적 가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한 걸음 더 깊이 이해하고 아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광복회 차원의 '우리역사 바로 알기'라 이승만의 공과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와 함께 앞으로의 역사인식이 당시 시대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가가 함부로 해석되어 왜곡되어 후대에 잘못 전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광복회는 제23대 광복회장으로 취임한 이종찬 회장은 좌우 민주 자유세력들을 넘나든 그의 이력과 더불어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예지의 역사적 균형감각으로 보면 최고의 적임이다. 말 그대로 한 마디 한 말씀이 새겨 들어야 할 동 시대의 산 증인이자 증거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이화영(1869~1953)의 후손이자 유년시절 부터 이승만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이종찬 광복회장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부터 연원을 기반으로 이미 이북은 소련을 사주를 받은 괴뢰정부가 김일성이라는 어용 지도자로 공산적화의 야망을 준비해 왔음이 6.25 기습남침으로 증명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정읍발언' 때이다.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은 내부에 극비리 지령을 내렸고 미국의 '미군 철수'와 '무관심' 속에 한반도의 적화를 치밀하게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동맹으로 대변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으로서는 '이승만 외교'에 대한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한반도의 공산화 위기에서 유일한 동맹국으로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낸 위대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동시에 전광석화 같은 '전쟁포로의 석방'과 '토지개혁'은 우물 밖의 넓은 세계를 보고 남북으로 갈라진 이념 보다 더 위대한 자유는 좌우대립이 낳은 이념의 산물인 전쟁과 대립의 포로를 석방하고 농사짓는 농민이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적 토대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이승만의 업적'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주석 백범은 이로써 임시정부의 소임을 다한 것으로 백범은 동향의 선배 이승만으 존경했다.
백범이야말로 이북의 남한 적화의도를 알고 지감적으로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백범이 공산주의를 싫어 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리제는 학술적으로 역사학자들이 정리해 정론화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지만 그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진실의 기록이어야 한다. 시대에 따라 권력의 입맛에 맞게 하려든 사례는 조선의 왕들에도 있었다.
미국의 닉슨 기념관에는 '워터게이트 상설관'이 있다고 한다. '불명예가 명예'
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공과 업적 과오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과거를 거울 삼아 역사 앞에 보다 더 진중하고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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