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세상만사

이순신의 - 5관 5포(官.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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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3-02 20:5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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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은 1580년 발포라는 이름의 5포 가운데 한 곳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2년 정도 봉직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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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략적 요충지는 육군의 초급장교이던 당시 이순신에게는 중요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관리들이 지방의 발령을 받아 내려가면 그 지역의 이름난 학자나 은퇴하여 낙향해 있던 전직관료 등을 찿아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게 관례였다'고 한다.  


경상우수사를 끝으로 은퇴한 정걸은 그 당시 순신이 만났던 역전의장수였다. 훗날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을 때 방장 조장으로 초빙해 정걸의 경륜을 그대로 계승하였던 이순신의 인맥경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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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관할지로 5관은 지금의 순천 광양 보성 낙양 고흥 등 다섯 곳이고 5浦라고 하는 곳은 고흥(옛 흥양)지역의 발포를 비롯해 녹도사도 방탑 여도 등을 말한다. 지금은 한려수도와 같은 남해 관광지로 이름난 지역이 모두 해전을 불사했던 군사요충지였던 것이다.  


이순신이 조선수군의 전략과 계획의 밑거름이 되었던 곳이 바로 5관 5포라는 말이다. 경상도에서 육상이나 해상으로 진출 이동시에 이곳들을 거치지 않으면 호남의 곡창지대나 대평원에 이르지 못했던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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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5관은 순천 보성 광양 낙양 흥양으로 5포는 다시말해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방답,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발포, 고흥군 점안면 여호리 사도,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여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녹도 등이다. 


전라좌수영의 1관에 해당하는 고흥의 흥양은 바다와 닿아 있는 육상의 행정구역이고 4포눈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으로 4浦를 지키지 못하면 적의 수군이 지상군을 싣고 오거나 병참을 공급하게 되어 전쟁의 승패가 걸린 곳이기도 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정해진 인적 물적자원을 잘 결합해 나라를 지키는 장수들의 핵심을 순간 순간의 현명한 판단과 위기를 대비한 의사결정이다.  


1992년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뇌물과 변칙에는 담을 쌓고 신상필벌과 일벌백계 정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이러한 5관 5포의 좌수영을 지켜왔던 이순신은 위기를 앞두고 선제적 대응으로 석달간의 화약용 염초를 천근이나 제조해 비축해 두었고 거북선의 돛으로 쓸 베를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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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당시 각 포구에 만연하던 횡령 부정 유용 등의 부조리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하여 종4품의 우후 첨사 만호 등의 지휘관의 순시를 돌게 하였다. 그의 난중일기는 전사에 남을 불가사의한 기록이다.  


1592년2월3일 임진왜란의 발발 하루전 완성된 거북선은 운용할 채비를 마치고 전투에 배치된다. 굴강은 판옥선과 거북선의 수리와 건조를 도맡아 하던 곳으로 여수나 선소 발포 등에서 지금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흥양전선소의 여도에서 - 녹도 - 발포 - 사도 = 개이도 - 방답에 이르는 좌수영은 육로 144km의 거리로 순시를 통하여 점검 및 훈련 등의 좌수사로서 이순신은 대량의 무기와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염초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3개월 동안 천근의 염초를 비축해 두었다. 지도자는 위기에 대비한 준비와 실전에 강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상황판단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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