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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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2-26 05:11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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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이다. 그것은 좌익선동과 공산주의로 부터 나라를 지킨 이승만의 승리이자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막아내며 오늘에 이르게 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이승만(재임 1948~1960)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12년간의 재임 중 토지개혁과 교육보국 한미동맹을 정착 시킨 철저한 보수 우익의 혁명가였다.
소련과 중국의 개입, 공산주의 사상을 등에 업고 기습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 6.25로 부터 4.19와 5.16 군사혁명 사이의 시대적 격동기에 이승만은 건국과 호국 부국으로 가는 기반과 기초를 닦아 한반도에 자유 민주 국가를 세웠다.
일제의 강압통치와 강점기로 부터 3.1 독립만세 운동의 배후로 국제정세와 국제관계사의 현장에서도 이승만의 지혜와 앞날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은 어디로 부터 나왔을까?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두루 마치고 우물 밖에서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애국심으로 일생을 교육과 가난으로 부터 체제의 안정 그리고 토지를 농민에게 준 농지개혁 등 그는 우리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 바로 국부였다.
세계사에서 미국의 자본주의 철학과 이념의 바탕 위에 공산주의에 맞서 승승장구하는 미국을 보며 일관된 반공 승공사상으로 한반도의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부터 나라를 구한 것이다.
자주적인 민족정신과 외교력이 빛을 발한 것은 '한미동맹'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전쟁억지력 힘에 의한 외교로 70년을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나라가 되는데 초석이 된 것이다.
소박하고 근면성실했던 그는 교육으로 넓은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신실한 기독교정신을 가진 기독교인으로서의 성경적 정서가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정신 -진정한 진보주의 우파 혁명가 - 민주적 시민혁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사의 위기를 늘 변화와 개혁 - 혁신의 계기로 만들어 냈던 불굴의 의지는 어디로 부터 나온 것일까! 굴곡의 현대사에서 미국 조차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던 시기 - 에 미국과 일본의 전쟁을 일찌감치 예감했던 그는 20대 일제 치하의 감옥살이 때의 일기에서 일본의 패망을 직감 했다.
바로 우라나라 조국 조선인의 해방이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대적 통찰과 혜안으로 조국 광복을 예비하고 준비해 왔던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왜곡된 사실을 바로 알고 建國 '건국의 의미' 나라를 세운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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