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세상만사

益善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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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3-12-31 20:3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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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종로구 익선동은 본래 '익동'이었다고 한다. '익선관'은 임금과 신하가 쓰던 冠으로  매미의 청렴을 본받아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의 5德을 교훈 삼아 임금은 매미의 날개가 위로, 신하는 매미의 날개를 아래로 하여 나누어 썻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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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 거리의 중심은 역시 종로거리였다. 창덕궁과 돈화문길 경복궁과 광화문, 북촌과 인사동, 종묘와 파고다공원 등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머금고 지금도 옛 모슴과 발자취를 대부분 갖추고 있다.  


벽초 홍명희의 팔흥문집은 그의 소설 '임꺽정'과 함께 익선동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천하의 소리 명창들의 소리가 익선동에 있었다. 조선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 선생은 익선동 땅을 매입하여 한옥을 지어 조선인들에게 분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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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어 서화가 김용진과 이병직이 살던 집이 '오진암'이라는 요정으로 변신한다. 당시 기생이란 조선의 춤과 노래,전통 가무극 외에도 다양한 재주를 지닌 藝人 예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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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 민족음악 민족미술이 모두 익선동을 중심으로 다 있었다. 운당여관의 여주인이었던 박귀희 선생은 운동여관과 자신의 공간을 모두 팔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를 만들었다. 현재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다. 


이슬을 먹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며 자기 집을 짓지도 않고 떄를 알아 허물을 벗고 기품있는 절제로 물러날 때를 알아 순풍에 돛을 달고 갈 길 바쁘게 간 박귀희 선생 처럼 익선동은 서울의 문화 중심 '서울의 자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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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악선동에 있었던 조선축음기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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