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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 [기고] 조각 전시, '레지나의 꿈'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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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2-06 10:0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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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주영 수필가] 서울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밤거리가 반짝거린다. 어디선가 4분의 2박자 탱고 음악이 흐른다. 남자가 이끌고  여자가 따르는 춤. 다리는 네개지만 심장은 하나라는 춤. 남녀의 역할이 확연한 애로틱한 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을 못보는 알 파치노에게 아름다운 향기의 여인은 몸을 맡기고 황홀한 탱고를 춘다. 


레지나(Regina)는 여왕이라는 뜻이다. 또, 레지나는 카톨릭의 성녀(聖女) 즉, 성모마리아를 의미 하기도 한다. 조각가 강승주는 자신의 작품에 '레지나의 꿈'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현재는 서울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12월 2일부터 열흘간 전시 중이다.


조각가 강승주의 '레지나의 꿈'이라는 제목은 EGO, REGINA라는 영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꿈을 향해 사는 여성인 나, 자아가 곧 여왕'임을 강조한다. 매력적인 여성의 두상을 입체 그대로 나타낸 조소와 여성 얼굴을 그린 회화가 주를 이룬다. 작가는  無의 진흙 속에서 성인(聖人)이자 왕(王)인 여인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불가마 1250 °c 속에서 구워내 나이를 멈춘, 영구 불변의 생명을 얻어냈다. 이마, 눈, 코, 입, 턱선... 실존의 예쁨을 넘어 성스럽고 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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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이다. 조각에 깊이 몰두하다  이상형의 여인을 만들게 되었고, 그 조각상을 사람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 조각상을  실제 인간으로 변신시키고,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강승주 작가 역시 피그말리온 신화 속 이야기처럼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조각들과 사랑에 빠졌으리라. 수려한 외모의 여인상들은 작가와 닮았고, 지혜와 미모의 주인공 그 자체다. 육체 예술의 신비로운 표정 속에 여왕이 꿈꾸는 우주가 들어있는 듯 하다. 남자들이 원하는 성적 모습을 넘어서는 엄중한 그 무엇이 존재한다. 신 앞에 당당한 자격을 갖춘 전사, 용감하고 자유로운 의지를 가짐과 동시에 부드러운 여성의 모습도 들어있다. 즉,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 뿐만 아니라 남성은 갖지 못하는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담겼다. 작가 자신의 높은 자존감과 숭고한 여성성에 대한 배움이 엿보인다. 창작을 위한 작가의 밤샘 작업, 예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고독의 순간들은 감수성 가득한 그녀와 작품이 교감하는 대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예술 속에서 그녀의 이상형과 영혼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조형을 통해 찬란한 시간을 멈춘 듯 하였다. 스치는 순간을 우리들에게 음미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조명과 바라보는 각도는 조소의 실루엣과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게 한다. 성모마리아, 보살의 자비로운 표정의 성인. 그리스 신전의 여신,  베니스 가면의 신비로움. 펑크 스타일 레게머리 여성, 무광의 토질 그대로의 질감, 도자기처럼 매끈함, 저항을 의미하는 갑옷을 두른  듯, 문신을 통해 내면을 가린듯, 금빛과 유채색으로 채색한 여인, 청동의 느낌 등등. 다양한 기법으로 마무리 하여 작품마다 새롭다.


생명력 가득한 여인들을 바라보니 나에게도 에너지가 전달된다. 대게는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자는 모습이 아니다. 눈은 감았으나 결코 잠들지 않았다. 반드시 깨어있다. 눈을 감으면 눈 앞의 것은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우주는 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별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눈을 감는다는 것은 수학에서 0(zero)이고 無이다. 그러나 0은 문명의 발전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된 신의 수이다. 또, 깨어있는 침묵의 눈감음은 우주, 신의 세계, 유한을 깨는 거대한 상상력, 통찰로 가는 명상 행위이다. 즉, 수학에서 무한(無限, infinite)을 의미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無가 無限이 된다.


레지나의 꿈... 여성스러움과 인간으로서의 '나 에너지'를 뿜고 있는 이번 전시와의 짧은 만남은 돌아오는 내내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나의 얼굴에 책임지고 사는가? 표정에 사랑, 그리움, 용서, 분노, 연민, 각오, 고뇌 등 모든 감정을 승화시켜 한결같은 맑은 표정을 갖고 있는가? 흙에서 발견된 여왕, 꿈을 품고 있는 보석같은 여인처럼 나(EGO)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나의 사회적 역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의무 이전에 나 자신에게 빛을 주고 아끼고 사랑하는가?


미래의 나와 대비시키며 오늘을 사는 나의 외면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친구가 되어, 나의 내면을 더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나의 마음 그대로 얼굴에 우러나는게 가장 빛이 나고 행복이기 때문에... 


작가님은 탱고를 배우신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와 하나가 되는 탱고. 그러나 뇌가 있기 때문에 혼자 추지 않고 완벽히 하나가 되어주는 것이다. 향기가 가득한 꿈 많은 그녀. 탱고 무대에서도 레지나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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